자정을 넘긴 시간에 편의점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운 적,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 나는 그날 밤 열한 시 반쯤 야근을 끝내고, 텅 빈 거리를 지나 집 앞 GS25에 들렀다가 매대 맨 앞줄에 놓인 파란 컵 하나에 손이 갔다. 온종일 회의와 모니터에 시달린 뒤라 뜨끈한 국물 하나면 됐는데, 마침 신상 딱지가 붙은 그 컵이 눈에 밟혔다. 결론부터 적으면 쯔양 기내식 라면은 늦은 밤 혼자 먹는 한 끼로 오랜만에 다시 사고 싶어진 컵라면이었다. 매운맛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북어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이 중심이라, 하루 종일 커피와 과자로 버틴 속을 데우는 데 의외로 잘 맞았기 때문이다.
첫 국물 한 모금의 정체
뚜껑을 반쯤 열고 뜨거운 물을 선까지 부은 뒤 4분 안팎을 기다렸다. 컵라면 특유의 마른 스프 냄새가 아니라, 물을 붓자마자 북엇국집에서 맡을 법한 구수한 김이 먼저 올라왔다. 김이 오르는 걸 지켜보며 상상한 맛은 흔한 매운 국물이었는데, 처음 입에 댄 국물은 방향이 달랐다. 먼저 올라온 건 북엇국에 가까운 맑고 시원한 감칠맛이었고, 그 뒤로 청양고추의 칼칼한 끝맛이 천천히 따라붙었다. 순서가 매운맛부터가 아니라 시원한 맛부터라는 점이 이 라면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건더기로 들어간 북어채가 물을 먹고 도톰하게 부풀어, 젓가락으로 건지면 콩나물처럼 아삭한 결이 씹혔다.
쯔양 기내식 라면은 이름에서 짐작되듯 예능에서 화제가 됐던 레시피를 편의점 컵라면으로 옮긴 제품이다. 북어 블록과 분말을 바탕으로 무와 대파를 더해 국물의 결을 잡았고, 여기에 청양고추 후레이크가 얹혀 밍밍하지 않게 균형을 맞춘다. GS리테일 설명으로는 이 국물 맛을 잡느라 열다섯 차례에 걸쳐 테스트를 거쳤다고 하는데, 실제로 마셔 보면 그 공을 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처음엔 기내식이라는 이름이 조금 의아했다. 비행기에서 라면을 먹어 본 기억이라고 해 봐야 뜨거운 물에 대충 불린 밍밍한 국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한 모금 더 마셔 보니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았다. 좁은 공간에서 김을 후후 불며 먹는 그 시원한 국물의 느낌, 짜지 않고 개운하게 넘어가는 그 감각을 흉내 낸 것이다. 편의점 매대에서 이런 콘셉트가 실제 맛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번엔 이름과 맛이 제법 맞아떨어졌다.
북어와 청양고추의 균형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두 재료가 서로를 잡아 주는 방식이었다. 북어만 강했다면 밍밍한 해장 라면에 그쳤을 텐데, 청양고추가 뒤에서 온도를 올려 준다. 반대로 청양고추만 강했다면 그냥 매운 라면이 됐을 텐데, 북어의 감칠맛이 매운 기운을 감싸 준다. 자정 넘어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밋밋하지 않은 지점을 잘 찾았다. 매운 라면을 먹고 싶은 밤과, 해장하듯 시원한 국물이 당기는 밤 사이 어딘가를 정확히 겨냥한 맛이었다.
내가 좋았다고 느낀 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 국물이 시원한 계열이라 늦은 밤에도 속이 편하다
- 청양고추 끝맛 덕분에 마지막 한 술까지 지루하지 않다
- 북어 건더기가 씹히는 식감이 은근히 든든하다
이 균형은 자극적인 국물을 앞세우는 다른 제품과 확실히 갈린다. 예전에 진하고 얼큰한 방향으로 밀어붙였던 GS25 돼지국밥라면을 먹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자리에 있는 라면이다. 크림처럼 묵직하게 감싸던 신라면 툼바와 비교해도, 이쪽은 가볍고 개운한 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튼 셈이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뒷맛이었다. 매운 라면을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게 남아 물을 계속 들이켜게 되는데, 이 국물은 그렇지 않았다. 청양고추의 칼칼함이 분명 있는데도 끝이 깔끔해서, 다 먹고 나서 입안이 텁텁하지 않았다. 자정 넘어 먹고 바로 자리에 누워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밤참을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이 감각의 차이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115그램 면발의 무게감
면을 건져 올리니 양이 눈에 띄게 많았다. 찾아보니 일반 용기면보다 대략 삼십오 퍼센트 늘린 115그램 구성이라고 한다. 숫자로 보면 감이 안 오지만, 실제로 젓가락에 걸리는 무게가 다르다. 야근 뒤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니라 제대로 된 한 그릇을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면발 자체는 쫄깃하다기보다 국물을 잘 머금는 부드러운 결이었다. 시원한 북어 국물과 만나면 후루룩 넘어가는 맛이 좋다. 다만 양이 많다 보니 후반부에 면이 국물을 빨아들여 조금 불어나는 건 감안해야 한다. 나는 오히려 마지막에 불어난 면을 국물에 적셔 먹는 쪽을 즐겼다.
먹는 방식도 조금 신경 썼다. 청양고추 후레이크는 국물에 다 풀지 않고 절반만 넣은 뒤, 먹으면서 매운 정도를 봐 가며 나머지를 추가하는 편이 좋았다. 처음부터 다 넣으면 북어의 시원함이 매운맛에 묻히기 쉽다. 반대로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에 있던 청양고추나 다진 마늘을 조금 더해도 국물이 무너지지 않고 잘 받아 준다. 이 라면은 그렇게 손을 대 가며 자기 입맛에 맞추는 재미가 있는 편이었다.
늦은 밤 혼자 먹는 한 끼에서 중요한 건 자극이 아니라 위로였고, 이 라면은 그 감각을 정확히 건드렸다.

가격은 1,950원이다. 편의점 컵라면치고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늘어난 면 양과 북어 국물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 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즘 편의점 신상 가격대가 전반적으로 올라 있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납득이 가는 선이었다. 대충 한 끼를 때우는 값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야식 한 그릇에 지불하는 값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같은 GS25 매대에서 파는 봉지라면 묶음과 비교하면 컵라면 한 개 값이 비싸 보일 수 있다. 다만 봉지라면은 냄비를 꺼내고 물을 끓이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이 라면은 자정 넘어 뜨거운 물만 있으면 끝난다. 야근 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밤에는 그 편리함이 값 차이를 메우고도 남았다. 같은 계열 신상들 가격을 떠올려 봐도, 대용량 간식 쪽은 만 원 가까이 하는 품목까지 있어서 라면 한 컵 2000원 선은 오히려 부담이 덜한 축이었다.
다음 장바구니 후보
한 컵을 비우고 나서 든 생각은 단순했다. 이건 다음에도 또 살 것 같다. 특히 술 마신 다음 날이나, 밤늦게 뭔가 뜨끈한 국물이 당길 때 가장 먼저 떠오를 자리에 들어왔다. 매운 라면은 이미 냉장고에 쌓여 있으니, 시원한 국물 계열로 하나쯤 상비해 두기에 딱 좋다.
쯔양 기내식 라면은 GS25가 지난봄부터 이어 온 대식가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제품이다. 큼직한 꿀호떡이나 반반 소스로 채운 대용량 닭강정처럼 양으로 밀어붙인 간식들이 먼저 나왔고, 이 시리즈 상품들이 출시 석 달 만에 누적 250만 개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 흐름의 끝에서 라면은 양뿐 아니라 국물의 결까지 챙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화제성만 노린 협업이었다면 그냥 더 맵고 더 큰 라면을 냈을 텐데, 북어로 시원함을 잡은 선택이 이 시리즈 안에서도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편의점 라면은 매운맛 경쟁만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더 맵게, 더 자극적으로 가는 신상들 사이에서 이렇게 시원한 방향을 정면으로 내세운 제품은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자극에 지친 사람일수록 이 국물의 결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다. 나처럼 야근이 잦아 밤늦게 끼니를 챙기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루의 끝에서 속을 편하게 데워 주는 한 그릇이라는 점만으로도 장바구니에 넣을 이유는 충분했다.
같이 곁들일 안주나 간식을 고민한다면 방향은 두 가지로 갈렸다.
- 짠맛으로 마무리하고 싶으면 바삭한 과자류가 국물과 잘 붙는다
- 단맛으로 입가심하고 싶으면 냉장 코너 디저트 한 조각이 어울린다
첫 번째 쪽으로는 예전에 후기를 남긴 포카칩 트러플맛처럼 향이 진한 과자가 시원한 국물 뒤에 의외로 잘 맞았고, 두 번째 쪽으로는 진한 두바이 초콜릿 한 조각이 매운 끝맛을 부드럽게 눌러 줬다. 밤참 조합을 더 파고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예전에 정리해 둔 편의점 야식 꿀조합 쪽도 같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쯔양 기내식 라면은 결국 요란한 신상이라기보다, 지친 밤에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한 그릇에 가까웠다. 화려한 마케팅보다 국물 한 모금의 완성도로 승부를 본 제품이라, 유행이 지나도 한동안 매대에 살아남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다음에 또 야근이 늦게 끝나는 날, 나는 아마 같은 매대 앞에서 같은 파란 컵에 다시 손을 뻗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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